한국으로 ‘돌아온’ 동포들이 여전히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느끼는 까닭은 무엇일까?

조경희 『낯선 집』에서 대답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돌아온 사람을 맞이하는 제도가 이들의 복수적인 삶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낯선 집』은 재한 자이니치들의 보육료 지원 헌법소원과 코로나19 당시 방역의 사각지대를 짚습니다. 책에 따르면 이런 배제는 노골적인 적대뿐 아니라 재외동포와 이주민을 국민 또는 지역 주민으로 상상하지 않아온 무지와 정책적 태만에서도 생깁니다. 당사자가 호소해야만 문제가 보이는 상태 자체가 이미 주민의 권리를 약화합니다.

문제는 사람을 배치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내국인을 중심에 두고 재외동포, 탈북자, 결혼 이민자, 이주노동자, 난민을 주변에 조건부로 놓는 구조에서는 어느 칸에 넣어도 자격이 조금씩 모자란 사람이 계속 생깁니다.

재한 자이니치에게 일본은 ‘재일’로 살아온 역사와 기억의 장소이자 가족이 사는 물리적 공간입니다. 동시에 한국에서 누릴 권리와 사회적 승인은 ‘재한’으로서 포기할 수 없는 조건입니다. 두 장소 가운데 하나만 고르게 하는 방식으로는 이 삶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한쪽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여러 장소에 걸친 생활권을 인정하고, 일상에서 그 경계를 허무는 과정입니다. 책이 말하는 ‘복수의 집을 가질 권리’는 바로 이 조건을 가리킵니다.

  1. 17~27쪽

    ‘귀환’ 뒤에도 남는 이동의 삶

    한국으로 온 재일동포를 단순한 귀환자로 분류할 때 복수의 소속과 이동 경로가 지워지는 문제를 다룹니다.

  2. 27~38쪽

    국경을 넘는 생활권

    한국과 일본 양쪽의 가족·기억·권리가 연결된 삶을 ‘복수의 집’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3. 39~53쪽

    재난이 드러낸 주민권의 빈틈

    보육료와 방역 지원에서 재한 자이니치가 누락된 사례를 통해 제도적 무지와 태만도 배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재한 자이니치에게 일본은 ‘재일’로 살아온 역사와 기억의 장소이며, 여전히 가족이 거주하는 물리적 공간이다. 동시에 한국에서의 권리와 사회적 승인은 ‘재한’으로서의 삶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이다.
— 『낯선 집』, 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