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반대가 ‘여성 안전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어떻게 봐야 할까?

조경희 『낯선 집』에서 대답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여성의 안전을 실제로 높이는 주장인지, 배제의 명분으로 여성을 빌려 쓰는 주장인지 갈라 봐야 합니다. 조경희는 2018년 예멘 난민 사태에서 스마트폰을 가진 난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감각이 성폭력 피해를 의심하고 축소하는 태도와 구조적으로 닮았다고 지적합니다. 둘 다 ‘진짜 피해자라면 이러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입니다.

『낯선 집』이 주목하는 것은 개별 주장의 진위만이 아니라 그 주장이 놓인 자리입니다. 일본에서 노골적 혐오발언이 줄어든 뒤 배제의 언어가 안전·질서·여성 보호로 이동한 것과, 한국에서 난민 반대가 여성 안전의 언어를 입은 것은 닮은 변화입니다.

2018년 제주에 예멘 난민이 도착했을 때 한국의 다문화주의가 내세우던 포용성은 빠르게 무너졌습니다. 책은 이를 통해 한국의 다문화 정책이 애초에 누구를 포용 대상으로 상정했고 누구를 바깥에 두었는지 되묻습니다.

이 질문은 난민 정책에 대한 하나의 결론을 대신 내려주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근거가 실제 안전을 위한 것인지, 어떤 근거가 배제를 위해 빌려온 명분인지 구분하게 합니다.

  1. 57~61쪽

    예멘 난민과 포용의 경계

    2018년 제주 예멘 난민을 둘러싼 반응을 통해 한국 사회가 누구를 포용의 대상으로 상정했는지 되묻습니다.

  2. 62~69쪽

    선별적 다문화주의의 위계

    재외동포·결혼이민자·이주노동자·난민을 서로 다른 자격의 층위에 놓는 주민관리 체계를 분석합니다.

  3. 70~74쪽

    여성 안전과 페모내셔널리즘

    여성의 권리가 실제 안전 정책이 아니라 난민 배제의 명분으로 동원될 때 생기는 모순을 살핍니다.

예컨대 스마트폰을 소지한 난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감각은, 여성의 성폭력 피해를 의심하거나 축소하는 태도와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 『낯선 집』, 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