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

조경희 『낯선 집』에서 대답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이 책은 집을 찾아야 할 장소가 아니라 만들어가는 실천으로 봅니다. 조경희는 재일조선인 3세로 2001년 처음 한국에 와서, 오랫동안 암송해온 할아버지의 본적지를 눈앞에 두고 택시를 돌렸습니다. 그날 놓아버린 것은 고향 자체가 아니라 고향으로 향하는 하나뿐인 이야기였습니다. 여기서 ‘집 만들기’는 원래의 둥지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인정받지 못하는 자리에서 관계를 엮고 안전을 조직해 낯선 장소를 삶의 터전으로 바꾸는 일이 됩니다.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는 흔히 고향에서의 이산, 타향에서의 수난, 언젠가 이루어질 귀환이라는 공식을 따릅니다. 상실한 기원을 회복해야 이산이 끝난다는 이야기입니다. 『낯선 집』은 귀환을 포기한 자리에서 새로운 집의 의미를 찾으며 이 공식을 뒤집습니다.

관계를 엮고 안전을 조직하는 집 만들기의 노동은 역사적으로 여성들의 돌봄노동과 분리될 수 없었습니다. 책이 재일조선인 연구와 페미니즘, 정동 이론을 함께 읽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낯선 집’은 결핍의 이름이 아닙니다. 환대받지 못한 곳에서도 서로를 돌보며 자기만의 삶의 자리를 기어이 만들어온 사람들의 실천을 가리킵니다.

  1. 5~10쪽

    귀환 서사를 멈춘 자리

    서문은 잃어버린 고향으로 돌아가면 이산이 끝난다는 단선적인 귀환 서사를 질문합니다.

  2. 17~38쪽

    복수의 집을 가질 권리

    재한 자이니치의 생활권과 기억을 통해 집이 한 국가나 한 장소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3. 291~295쪽

    낯선 곳에서 집 만들기

    결론은 기원을 회복하는 대신 관계와 돌봄을 엮어 현재의 장소를 집으로 만드는 실천을 제안합니다.

역사는 하나의 기원에서 직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과거의 파편들이 불현듯 번쩍이는 순간들로 구성된다. … 내가 그날 택시에서 놓아버린 것은 고향이 아니라 고향으로 향하는 단선적이고 목적론적인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 『낯선 집』, 2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