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를 몰아낸 뒤에도 왜 또 혁명이 일어났을까?

쉴라 피츠패트릭 『러시아혁명』에서 대답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황제가 물러났어도 사람들이 요구한 평화와 토지, 생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임시정부는 전쟁을 계속했고 토지 개혁을 미뤘으며, 노동자와 병사들의 소비에트와 권한을 나누는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여름의 군사적·정치적 위기는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렸고 볼셰비키의 지지를 넓혔습니다. 10월 혁명은 2월 혁명의 자동적인 다음 단계가 아니라, 이런 갈등 속에서 정치 세력들이 선택하고 행동한 결과입니다.

2월 혁명 뒤에는 임시정부와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가 함께 등장했습니다. 정부는 공식 통치를 맡았지만 소비에트는 노동자와 병사들의 지지, 군대와 주요 시설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비에트 지도부는 처음부터 정부를 대신해 권력을 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중권력은 두 기관이 협력해야 유지될 수 있었지만, 전쟁과 노동정책, 토지를 둘러싼 갈등이 계속됐습니다.

병사들은 혁명으로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렸고, 노동자들은 임금과 노동시간, 실업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농민들은 지주의 땅을 점거하고 재분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행정 능력과 보상 문제 등을 이유로 토지 개혁을 제헌의회에 미뤘습니다. 군주제를 무너뜨렸다는 사실만으로 전쟁터와 공장, 농촌의 삶이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여름의 공세가 실패하고 코르닐로프 사건으로 우익 반혁명의 위협이 커지면서, 타협하지 않는 볼셰비키의 입장이 힘을 얻었습니다. 이후 볼셰비키는 주요 소비에트에서 다수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 지도부 안에서도 무장봉기를 할지, 소비에트를 통해 권력을 이양받을지 의견이 갈렸습니다. 이런 논쟁을 함께 보면 10월 혁명을 처음부터 정해진 결말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1. 94~100쪽

    임시정부와 소비에트의 이중권력

    두 기관의 권한과 지지 기반, 전쟁을 둘러싼 갈등을 설명합니다.

  2. 106~112쪽

    노동자·병사·농민의 요구

    평화와 노동조건, 토지 문제에서 민중의 기대와 정부의 대응이 어긋나는 모습을 읽습니다.

  3. 112~122쪽

    여름의 위기와 볼셰비키의 선택

    전쟁 수행의 실패와 반혁명의 위협, 무장봉기를 놓고 벌어진 당내 논쟁을 살핍니다.

토지 문제의 심각성과 1917년 초여름부터 보고된 토지 몰수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는 토지 개혁을 질질 끌었다.
— 『러시아혁명』, 1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