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이끈 사람들은 왜 ‘인민의 적’이 되었을까?

쉴라 피츠패트릭 『러시아혁명』에서 대답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혁명에 반대하는 외부의 적뿐 아니라 당 안의 반대파와 옛 동료까지 숨은 음모자로 취급하는 정치가 확대됐기 때문입니다. 대숙청에서 ‘인민의 적’은 실제 범죄가 입증된 사람을 가리키는 객관적 이름이 아니라 체제가 붙인 낙인이었습니다. 스탈린 지도부와 비밀경찰이 체포와 처형을 추진했고, 반복된 당내 숙청과 시민들의 고발이 의심을 불려갔습니다. 저자는 이를 혁명기의 관행과 이어서 설명하면서도 국가가 주도한 테러라는 책임을 분명히 합니다.

1936년부터 열린 공개재판에서는 옛 반대파 지도자들이 암살과 산업 파괴, 외국 정보기관과의 음모를 꾸몄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이후 당·정부·군대의 고위 관리들까지 ‘인민의 적’으로 고발되고 체포됐습니다. 재판에서 자백이 나왔다는 사실을 혐의가 모두 사실이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책은 공식 기록이 잘 짜인 각본처럼 보인다고 지적합니다.

당내 분파를 금지하고 반대파에게 비밀경찰을 동원한 관행은 의견의 차이를 정치적 위험으로 바꾸었습니다. 정기적인 당원 심사에서는 과거의 당적과 친척, 실수와 비난이 반복해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숙청으로 의심이 해소되기보다 더 커졌고, 이미 처벌받은 사람과 그 가족도 숨은 적으로 취급됐습니다. 혁명에 기여한 경력조차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습니다.

시민들의 불만과 개인적 이해관계에서 나온 고발도 숙청을 확대했습니다. 그러나 고발에 대중이 참여했다는 사실과 국가가 체포·처형을 조직했다는 사실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저자는 대숙청에서 자발적인 대중 폭력의 역할은 작았고, 국가 테러가 중심이었다고 설명합니다. 피해도 지도자에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이 역사는 권력이 비판과 갈등을 음모로 규정할 때 누구나 배제와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1. 291~295쪽

    공개재판과 ‘인민의 적’이라는 낙인

    옛 혁명 지도자와 여러 사회집단이 음모 혐의와 대규모 탄압의 대상이 된 과정을 설명합니다.

  2. 296~298쪽

    당내 반대파의 제거와 반복되는 숙청

    정치적 불관용과 당원 심사가 숨은 적에 대한 의심을 키운 경로를 읽습니다.

  3. 299~301쪽

    시민의 고발과 국가 테러의 책임

    대중 참여가 숙청을 확대했지만 체포와 처형은 국가가 주도했음을 구분해 살핍니다.

대중 참여가 없었다면 대숙청은 눈덩이처럼 불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러시아혁명』, 2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