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령 홍콩은 민주주의 사회였을까?

전명윤 『리멤버 홍콩』에서 대답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홍콩에 언론과 경제 활동의 자유가 있었다고 해서 영국의 식민 통치가 곧 민주주의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책은 총독과 입법회가 오랫동안 임명제로 운영되었고, 시민이 자신의 대표를 선출할 권리는 반환을 앞두고 뒤늦게 확대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자유로운 생활과 통치에 참여하는 권리는 구분해야 합니다. 영국 시기를 이상화하는 대신 누가 결정권을 가졌고 누구의 표가 무거웠는지 살펴야 합니다.

초기의 홍콩 입법회는 총독이 임명한 관료들로 구성된 보좌 기구였습니다. 이후 상공업계 인사들이 포함되었지만 일반 시민의 정치적 참여가 보장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명윤은 이 구조를 ‘정치적 권리가 제외된 자유’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돈을 벌고 쓰거나 의견을 말할 공간과, 통치자를 선택하고 책임을 묻는 권리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반환 협정 이후 영국은 선거 제도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1991년 지역구 선거가 도입되고, 마지막 총독 크리스 패튼은 투표권을 확대했습니다. 그러나 직능단체 의석을 남겨둔 구조에서는 업계와 계층에 따라 한 표의 무게가 달랐습니다. 개혁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정치적 권리가 주어졌는지 따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책은 반환 직후 기존 의회가 해산되고 임시 입법회가 등장한 과정까지 추적합니다. 2014년에는 행정장관 후보를 추천위원회가 고른 뒤 시민이 투표하도록 하는 방안을 놓고 갈등이 벌어졌습니다. 후보가 되는 길이 제한된다면 투표의 형식만으로 시민의 선택권이 충분해지지는 않습니다. 홍콩의 역사는 식민 통치의 끝과 민주주의의 실현이 저절로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1. 93~94쪽

    총독의 보좌 기구였던 입법회

    영국 통치 아래서 생활의 자유와 정치적 참여가 분리된 구조를 설명합니다.

  2. 95~98쪽

    반환 직전의 개혁과 서로 다른 표의 무게

    지역구 선거와 투표권 확대, 직능단체 의석의 한계를 함께 살핍니다.

  3. 139~142쪽

    후보를 고르는 권한과 보통선거

    2014년 행정장관 선거안에서 시민의 투표권과 후보 선택권이 충돌한 문제를 읽습니다.

학자들은 이 상황을 ‘정치적 권리가 제외된 자유’라고 부른다.
— 『리멤버 홍콩』, 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