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에 문제가 있다면 통째로 없애야 할까?

강신준 『비상구는 왼쪽에』에서 대답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강신준이 읽는 마르크스의 대답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산력과 교환의 확대처럼 자본주의가 이룬 성취를 버리기보다, 그 안에서 사람의 노동을 다른 사람이 지배하는 관계를 바꾸자는 것입니다. 책은 이를 모순을 없애면서도 성취는 보존해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지양’의 관점으로 설명합니다. 비판의 대상은 사회의 모든 활동이나 특정 개인의 존재가 아니라, 풍요와 착취를 함께 만드는 관계입니다.

책은 자본주의를 오직 악으로만 묘사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협력해 생산하고 교환하는 체계는 이전보다 큰 풍요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풍요를 만드는 노동자와 생산수단의 소유자가 분리되어 있어, 생산의 확대가 노동자의 자유를 자동으로 확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입니다.

‘지양’은 단순히 적당히 타협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구분해야 합니다. 생산기술과 사회적 협력은 발전시키되, 그 성과를 독점하는 구조는 바꾸자는 논리입니다. 저자는 장에 구더기가 생겼다고 장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비유로 이 차이를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 책의 체제 비판을 읽을 때는 ‘누구를 몰아낼 것인가’만 묻기보다 ‘사람들 사이의 어떤 관계를 바꿀 것인가’를 살펴야 합니다. 노동시간, 생산수단의 소유, 의사결정의 권한은 그 관계를 구체화하는 문제들입니다. 책이 제안하는 설계도를 평가하려면 이 각각의 변화가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따져야 합니다.

  1. 76~82쪽

    문명과 야만이 함께 있는 구조

    자본주의의 생산과 교환이 이룬 성취와, 타인의 노동을 지배하는 관계가 한 체제 안에 공존한다는 설명을 읽습니다.

  2. 83~86쪽

    구더기 때문에 장을 버릴 수는 없다

    ‘지양’의 뜻을 비유로 풀어내며, 문제를 비판하는 일과 성취까지 모두 폐기하는 일을 구분합니다.

  3. 102~105쪽

    바꿔야 할 것은 사람 사이의 관계

    사회의 변화를 개인을 제거하는 일이 아니라 노동과 소유를 둘러싼 관계의 변화로 이해하는 관점을 살핍니다.

마르크스는 문제를 없애는 게 아니라 그걸 고쳐서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자고 얘기합니다.
— 『비상구는 왼쪽에』, 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