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줄 알면서도 왜 청과의 전쟁을 피하지 않았을까?

계승범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대답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척화론자들에게 청을 황제의 나라로 인정하는 일은 국가의 생존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정체성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계승범은 명을 아버지로 섬긴 조선이 그 아버지의 적인 청과 군신 관계를 맺는 것을 충과 효를 버리는 행위로 여겼다고 설명합니다. 그 명분 아래에는 양반 지배 질서를 지키려는 현실적 이해관계도 있었습니다. 이 해석은 전쟁을 일으킨 청의 책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조선이 불리한 조건에서도 선택을 바꾸기 어려웠던 이유를 묻습니다.

정묘호란 뒤 후금과 맺은 형제 관계와, 이후 청이 요구한 군신 관계는 조선 지배층에게 같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형제 관계는 임시로 받아들일 수 있어도, 명 황제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청을 새 황제로 인정하는 것은 기존의 질서를 뒤집는 일이었습니다. 저자는 이 차이에서 척화의 강도를 설명합니다.

그들에게 ‘존왕양이’는 정통 군주를 받들고 이적을 물리친다는 원칙이었습니다. 명은 문명의 중심이고 청은 배척할 대상이라는 구분은 외교 정책을 넘어 인간의 도리와 나라의 존재 이유를 가르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군사적 승산을 따지는 논의가 윤리적 비난에 밀릴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책은 명분을 진심으로 믿었다는 설명과 기득권을 지키려 했다는 설명을 양자택일하지 않습니다. 명을 향한 충효의 논리는 조선 안에서 왕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의 위계도 떠받쳤습니다. 따라서 그 질서가 흔들리면 양반층의 지배 근거도 흔들릴 수 있었습니다. 척화의 언어와 그것이 지키려 한 사회 구조를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1. 96~102쪽

    형제 관계와 군신 관계의 차이

    정묘호란 뒤의 강화와 척화 논의를 살피며, 후금과의 관계를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묻습니다.

  2. 103~113쪽

    존왕양이가 나라의 존재 이유가 되다

    청을 황제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가 국가의 안위보다 강한 원칙으로 작동하는 양상을 읽습니다.

  3. 119~129쪽

    충효의 명분과 지배층의 이해관계

    명의 군부 지위를 지키려는 명분이 조선 안의 양반 지배 구조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 설명합니다.

조선왕조의 국시는 앞서 확인했듯이 바로 존왕양이 곧 존주 의리였으며, 그것이 조선왕조의 존재 이유이자 국가정체성이었다.
— 『아버지의 그림자』, 1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