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공업화는 왜 농민의 삶을 무너뜨렸을까?

쉴라 피츠패트릭 『러시아혁명』에서 대답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스탈린 지도부가 공업화에 필요한 값싼 곡물과 도시 노동력을 확보하면서 농민의 선택과 생존을 희생시켰기 때문입니다. 강제로 추진된 농업집단화는 농민의 재산과 마을의 운영 방식을 바꾸고, 국가가 낮은 가격으로 많은 곡물을 가져가게 했습니다. 강제 이주와 가축의 대량 도살, 1932~1933년 기근이 이어졌습니다. 공업 생산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이 방식이 불가피했거나 그 대가가 정당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지도부는 빠른 공업화를 국력과 군사력 증강의 전제조건으로 보았습니다. 도시의 노동자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수출로 산업 장비를 사려면 충분한 곡물을 낮은 가격에 확보해야 했습니다. 곡물 조달 위기가 이어지자 스탈린은 농업집단화를 통제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공업화와 집단화의 연결은 처음부터 완성된 계획이라기보다 위기에 대응하며 강압적으로 확대된 정책에 가까웠습니다.

‘자발적’ 가입을 내세웠지만 현장에서는 협박과 강요가 이루어졌고, 쿨라크로 지목된 가족의 재산은 몰수됐습니다. 농민들은 가축을 넘기기보다 도살하거나 팔았고, 마을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집단농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농업이 곧바로 기계화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책은 마을의 가장 큰 변화가 국가의 행정 통제와 곡물 거래 방식에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높은 조달량과 낮은 수매가 아래에서 당국은 식량과 종자까지 가져갔고, 주요 곡물 생산 지역에 기근이 닥쳤습니다. 기근 때는 농민들이 도시로 피난하는 길도 막혔습니다. 한편 도시로의 이동에는 새 일자리를 찾아 떠난 경우와 집단농장에서 도망친 경우, 강제 이주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산업 성장과 농민의 피해를 함께 보는 일은 성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묻는 일입니다.

  1. 236~240쪽

    국가안보와 공업화의 속도

    중공업과 국가안보를 우선한 목표, 계획과 실제 이행 사이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2. 245~250쪽

    강제 집단화와 농민의 저항

    곡물 확보를 위한 통제와 재산 몰수, 가입 강요, 마을 운영의 변화를 읽습니다.

  3. 251~253쪽

    기근과 이주, 성장의 대가

    가혹한 조달과 기근, 이동 제한, 도시 노동력 확대로 이어진 인구 격변을 살핍니다.

마을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운영 방식과 곡물 거래 절차였다.
— 『러시아혁명』, 2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