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을 도운 나선정벌은 어떻게 북벌의 성공으로 기억됐을까?

계승범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대답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원정에서 청이 맡은 역할을 뒤로 밀고, 조선이 북쪽 오랑캐를 물리쳤다는 성과를 앞세웠기 때문입니다. 1654년과 1658년의 나선정벌은 청의 요구에 따라 조선군이 러시아 세력과 싸운 사건이었습니다. 계승범은 1690년 숙종이 신류를 기린 제문을 전환점으로 읽습니다. 청의 요구와 지휘가 지워지면, 원치 않은 출정의 기억도 조선이 주도한 북벌의 성공이라는 이야기로 바뀔 수 있었습니다.

북벌은 청을 공격해 삼전도 항복의 치욕을 씻겠다는 담론이었습니다. 그런데 효종 시기의 조선군은 실제로 청의 요구를 받아 그 지휘 아래 러시아 세력과 싸워야 했습니다. 계승범은 이 엇갈림에서 나선정벌을 둘러싼 복잡한 심리를 읽습니다. 2차 원정의 사령관 신류가 남긴 시에는 승리의 자부심만이 아니라 어서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탄식이 나타납니다.

청의 지배가 안정되면서 북벌을 계속 약속하기는 어려워졌지만, 실패를 그대로 인정하기도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웠습니다. 책은 숙종이 신류의 사후 10주기에 내린 제문에서 못 이룬 북벌을 한탄하기보다 원정의 전공을 크게 기린 점에 주목합니다. 저자는 이를 ‘북벌의 시대’를 성공의 기억으로 정리하려는 시도로 해석합니다.

여기서 바뀐 것은 전투의 장소나 상대가 아니라 사건을 설명하는 구도입니다. 누가 출정을 요구했는지, 누구의 지휘를 받았는지가 약해지고 조선 대 북쪽 오랑캐라는 구도가 강조됩니다. 같은 사건도 생략과 강조에 따라 다른 국가의 이야기로 남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사례의 핵심입니다.

  1. 164~169쪽

    북벌론의 대내적 기능

    효종의 북벌론을 왕권과 양반 지배 질서를 회복하려는 정치 담론으로 읽고, 숙종 시기의 새로운 과제를 설명합니다.

  2. 170~180쪽

    승리한 장군의 탄식

    나선정벌의 경위와 신류의 시 등을 통해, 청의 요구에 따른 출정이 조선군에게 남긴 착잡한 기억을 살핍니다.

  3. 181~190쪽

    청의 역할을 지운 성공의 이야기

    숙종의 제문과 후대의 기록을 따라 나선정벌이 북벌의 성과로 재구성되는 과정과 그 정치적 의미를 분석합니다.

국가 권력이 주도한 집단적 기억 바꾸기요, 국가정체성의 회복이었다.
— 『아버지의 그림자』, 1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