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은 처음부터 지도 위의 선이었을까?

김선민 『인삼과 국경』에서 대답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아닙니다. 『인삼과 국경』이 보여주는 청과 조선의 경계는 처음에는 여러 집단이 오가며 자원을 함께 이용하는 넓은 변경이었습니다. 청이 출입과 자원을 통제하면서 비어 있는 완충 지대가 만들어졌고, 19세기 후반 인구 이동과 근대적 영토 주권이 중요해지자 비로소 선명한 국경선이 요구되었습니다. 국경은 자연이 그어둔 선이 아니라 권력과 이동, 협상의 결과였습니다.

전근대의 경계는 지도 위 좌표보다 누가 어디까지 다니고 세금을 내며 자원을 채취할 수 있는지에 가까웠습니다. 청 황제의 질서에서 조선은 경계 밖의 외국인 동시에 조공 관계 안의 번방으로 이해될 수 있었습니다. 이 중첩된 위치는 오늘날의 국내·국외 구분과 다릅니다.

면처럼 넓은 국경지대는 불완전한 국경이 아니라 당시 두 나라가 분쟁을 줄이는 방식이었습니다. 선을 정확히 긋지 않는 모호함이 오랫동안 평화와 통치를 함께 가능하게 했습니다.

  1. 13~38쪽

    변경·국경지대·국경의 구분

    사람과 자원이 오가던 변경이 통제된 국경지대를 거쳐 근대의 선형 국경으로 바뀌는 개념을 정리합니다.

  2. 85~125쪽

    비워 둔 땅이 만든 완충 지대

    청의 봉금과 조선의 월경 통제가 정확한 선보다 넓고 모호한 완충 지대를 형성한 과정을 보여줍니다.

  3. 237~246쪽

    근대 주권이 요구한 선

    19세기 후반 인구 이동과 영토 주권의 등장으로 오래 용인되던 모호함이 확정된 국경선의 문제로 바뀌는 과정을 정리합니다.

두 정치체의 경계 인식 또한 시간에 따라 변했다.
— 『인삼과 국경』, 238쪽